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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프린세스] 통곡의 벽 외전 1-4

마야마얌 2022. 2. 15. 04:23

나는 당장 흰 코뿔소 마을로 향해 아딜라를 찾기로 한다.
하지만 먼저 해결해야 할 문제가 하나 있다.

라이트 램프로 돌아가서 기력을 회복해야 돼. 설령 그렇게 하고서도, 그 여정을 다 해낼 힘이 모자랄지도 몰라...

지나네 방 창문 밖을 서성이며, 몰래 방으로 숨어들어갈 궁리를 하느라 골머리를 앓는다.

라이트 내 속임수 마법이 실패해서 그애가 날 보기라도 하면, 이보다 어색할 순 없을 거야.
그냥 기다렸다가 방을 떠나면 몰래 들어가야겠어.

그때 창문이 갑자기 휙 열려, 창유리가 거의 내 코에 부딪힐 뻔한다.
사태의 장본인이 이글거리는 눈으로 날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다.

지나 라이트, 어디 갔었어요? 하루 종일 찾아다녔다고요!
라이트 내가 창밖에 있는 줄은 어떻게 알았어?!
지나 밖에서 꿍얼대는 소리도 들리고, 공중을 떠다니는 그림자도 보이고...
라이트 (안돼! 투명 마법을 쓰는 걸 깜빡했어!)
지나 당장 들어와요!

지나가 날 방 안으로 휙 잡아당기더니 창문을 쾅 닫는다.

지나 도대체 어디로 도망갔다 이제 와요?
라이트 흥! 난 내 뜻대로 마법을 쓸 수 있는 자유로운 영혼이라고. 어딜 가든 내 마음이야.
얼른 저 사물함 열어 줘! 램프에서 기력을 보충해야 한다고.
지나 뜻대로 쓰실 수 있는 강력한 마법이 있다면서요? 그럼 사물함에도 직접 들어가시지 그래요?
라이트 지금 내가 힘을 온전히 다 못 쓰는거 알잖아! 게다가 이미 오늘 마법을 꽤 많이 썼다고.
내가 불리한 상황이라고 그걸 이용해 먹어도 되는 거야?
지나 램프로 돌아가게 해 줄게요. 그치만 우선 사과부터 해야죠.
라이트 왜 내가 사과를 해? 사과할 사람은 바로 너지!
지나 내 방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놓고, 한마디 말도 없이 나갔잖아요! 걱정돼서 잠도 못 잤다고요!
자기 행동을 좀 돌아볼 줄도 알아야 하는 거 아닌가요?

그제야 지나의 신발에 묻은 모래와 너덜너덜해진 치맛자락이 보인다.

라이트 (밤새 나를 찾아다녀서 그런 건가? 날 엄청 걱정했던 것 같은데.)

  • 사과한다

라이트 (아, 이쯤 해두자고. 마음이 넓은 내가 먼저 달래주지 뭐.)
오래된 도시의 폐허에서 날 기다리는 갈립의 모습이 마음에 스친다. 더 이상 시간을 낭비하지 않기로 한다.
라이트 좋아...내가 어젠 너무 경솔했어. 미, 미안해.

  • 말다툼을 계속한다

라이트 그치만 네가 너무 사나웠잖아! 도통 뭐 얘기라곤 해볼 수가 없고!
너무 화가 나서 열 좀 식히려고 한밤중에 사막까지 나다녔다고. 그것도 좀 생각해야 하는 거 아냐?
지나 말이 나와서 말인데, 우리 합의 사항에 규칙을 몇 가지 더 추가해야겠어요.
규칙 네 번째: 어젯밤처럼 아무 말도 없이 어디 가버리지 말 것.
라이트 너 너무 흥분한 거 아냐?
지나는 손에 든 열쇠를 휙휙 돌리면서 자신만만하게 턱을 치켜든다.
라이트 (으, 하필 내 약점을 쥐고 있다니 운도 좋지.)
(갈립이 그 오래된 도시 근처에서 날 기다리고 있어. 꾸물거릴 시간이 없어.)
내키진 않지만 나는 항복을 선언하고 지나에게 사과하기로 한다.

지나 사과 받아줄게요. 앞으로는 내가 정한 규칙을 따라야 돼요.
라이트 (말인즉슨, 뭔가 하기 전에 저애랑 몇 마디 얘기만 하면 된단 거지. 대단한 건 아니네.)
알았어. 얼른, 램프 꺼내줘.

지나가 고개를 젓더니 사물함에서 램프를 꺼내온다.
마법의 힘이 서서히 내 안에 쌓이더니, 순식간에 기력이 돌아온다.

라이트 이거만 있으면 어디든 여행할 수 있어! 흰 코뿔소 마을은 멀리 떨어져 있을지 몰라도, 더는 걱정 없어!
지나 흰 코뿔소 마을이요?
라이트 (아뿔싸! 순간 생각에 사로잡혀서 실수로 말해 버렸네...)
지나 신밧드 씨가 가끔 흰 코뿔소 마을의 상인들과 거래를 해요. 수도와는 꽤 거리가 있었던 걸로 아는데.
거기서 뭐 할 일이라도 있어요?
라이트 (아마 갈립 얘기를 털어놓을 때까지 끝도 없이 질문하겠지.)
(그치만 솔직하게 내놓고 얘기하면 또 이상한 규칙 같은 걸 내밀려나?)

나는 깊은 고민에 빠진다.

  • 지나에게 말한다

라이트 (얘기해야겠다. 아마 같이 가면 더 나을지도 몰라.)
(이애가 큰 도움이 못 되더라도, 램프를 가지고 다니면서 지켜줄 수는 있겠지.)

  • 지나에게 말하지 않는다

라이트 (시간을 벌려면 얘길 좀 지어내야겠어.)
그거라면...어제 거리에서 듣기로 흰 코뿔소 마을의 경치가 끝내준다던데, 나도 가 보려고...
지나가 꿰뚫는 듯한 눈빛으로 날 뚫어져라 쳐다보는 바람에 조금 긴장이 된다.
지나 라이트, 당신이 뭘 숨기고 있으면 눈이 이리저리 헤매는 거 알아요? 도통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질 못하죠.
어젯밤에 안 돌아왔잖아요. 그때 무슨 일이 있었던 거죠?
라이트 아무 일도 없었어, 아무렇게나 추측하지 마.
지나의 눈에 걱정과 의뭉스러움이 뒤섞여 있다.
지나 우리가 계약을 맺고 함께 지내는 이상, 서로에게 솔직해야 돼요.
따로 움직이지 않고, 뭐든 한 팀으로 같이 해결해야 한다고요.
라이트 (맞는 말이야. 누가 도와준다면 아딜라를 좀더 빨리 찾을 수 있을지도 몰라.)

나는 갈립 얘기를 지나에게 털어놓는다.

지나 너무 슬픈 얘기에요.

지나의 눈이 새빨개진다. 의외로 마음 따뜻한 면도 있는 모양이다.

지나 갈립의 소원을 들어줘야 해요. 라이트, 흰 코뿔소 마을에 나도 같이 갈게요.
라이트 정말 같이 가려고?
지나 당연하죠! 신밧드의 상단도 며칠 뒤면 서부로 길을 떠날 거에요.
그들을 따라 흰 코뿔소 마을로 가면 돼요. 시장에서는 정보를 찾기가 수월할 거에요!
라이트 괜찮은 생각인데, 그 뚱보가 허락하려나?
지나 신밧드는 무던한 사람이라 별 문제 없을 거에요.
라이트 그럼 상단의 무역상으로 위장해야 되겠군.
지나 그럴 필요 없어요, 내가 램프를 가지고 갈게요. 그냥 거기서 쉬고 있으면 돼요.
라이트 오, 그거 일리 있네. 너 꽤 머리가 잘 돌아가는구나.
그나저나 왜 이렇게 금방 수긍하는 거야? 별다른 조건도 없이...
지나 갈립을 위해서 아딜라를 찾아줘야 해요. 일손이 하나 더 있으면 일이 쉬워지니까요.
게다가 난 당신의 파트너인데, 어떻게 혼자 이 일을 하게 두겠어요?
라이트 누가 네 파트너야? 그냥 우린 잠시 계약을 맺은 것뿐이야.

그치만 지나의 웃는 눈을 보고 있자니, 조금 멋쩍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우리는 상단에 합류해 흰 코뿔소 마을에 도착한다.
그저 국경 근처의 작은 마을이지만, 한 번도 본 적 없는 누군가를 찾기가 쉽지만은 않다.

지나 갈립은 오십 년 전에 아딜라와 헤어졌어요. 오십 년이면 인간의 인생은 많은 굴곡을 거쳐 가죠.
무작정 찾아나서면 안 돼요, 제대로 된 계획이 필요해요.
라이트 가만 있자, 그나마 제일 나은 실마리라고는-

  • 유목민 부족의 후손

라이트 아딜라는 부족을 여기 정착시키려고 흰 코뿔소 마을의 귀족과 결혼했어.
유목민 부족의 후손을 찾아내면, 아딜라에 대해 알고 있을지도 몰라.

나는 사람 형체를 유지하기 위해 마법을 사용한다. 그리고 주변에 물어보고 다니려고 지나와 잠시 떨어진다.

염색공 물론 여기 유목민 부족의 후손이 있죠! 여긴 국경 마을이고, 유목 부족들이 자주 와서 거래하니까요.
유목민 부족과 도시민 사이의 결혼도 드문 일이 아니고요.
길거리 악사 나도 유목민 부족의 후손이에요. 우리 아버지의 고모의 형제의 조부께서 북쪽에서 온 유목민이셨죠.
직물 상인 오, 얼마 안 된 일인데, 어떤 미친 계집애 하나가 유목민과 함께 도망쳤다죠!
그애의 아버지는 너무나 화가 나서 하룻밤만에 머리가 하얗게 세 버렸고, 어머니는 아직도 매일 울고 있다지...
라이트 흠, 오십 년 전에 어떤 유목 부족이 이 도시에 정착하지 않았나요?
직물 상인 아, 그런 일이 있었는지 잘 모르겠네요. 오십 년 전이면 아직 태어나기도 전이라서.
하지만 어머니 말씀으로는, 이곳이 그전엔 싸움이 잦아 매우 위험한 곳이었대요.

  • '아딜라'라는 이름

라이트 부족을 여기 흰 코뿔소 마을에 정착시키려면, 아딜라는 지체 높은 사람과 결혼해야 했을 거야.
귀족가의 일원인데다 미모도 빼어났다니, 이 도시의 유명인사였을지도 몰라...

나는 사람 형체를 유지하기 위해 마법을 사용한다. 그리고 주변에 물어보고 다니려고 지나와 잠시 떨어진다.

염소치기 아딜라? 여기 사람 이름 같지는 않은데요...입에 착 감기기는 하네요.
노파 흠...그 이름을 들어본 거 같기도 하고...아닌 거 같기도...
라이트 여기 마을의 귀족과 오십 년 전에 결혼했대요. 상대는 지체 높은 집안이었을 거에요.
노파 오십 년...너무 오래 전이라 기억이 안 난다우.
짐꾼 종종 이 도시 귀족가에 물건을 실어나르는데, 아딜라라는 이름은 들어본 적이 없네요.
흰 코뿔소 마을은 그간 여러 전투에 휘말려 왔어요. 말씀하신 그 여인은 가족과 이미 여길 떴을지도 몰라요.

지나와 내가 무수히 많은 사람들에게 묻고 다니지만, 아무것도 찾아내지 못한다.

라이트 이거 이상하네. 왜 실마리를 단 하나도 찾을 수가 없지?
지나 아마 너무 오래 전 일인데다, 그런 싸움은 오랫동안 너무 잦았나 봐요. 그들이 벌써 이 도시를 떴을 수도 있고요.
라이트 아딜라는 이미 오래 전에 흰 코뿔소 마을을 떠났을지도 몰라.
여기서 계속 묻고 다녀봤자 의미가 없어. 다른 방법을 생각해 보자.
지나 하지만 상단이 내일 떠나는데요. 상단으로 제시간에 합류하겠다고 신밧드 씨와 약속했어요.
라이트 빈손으로 돌아가면 갈립에게는 뭐라고 말해...
지나 일단 수도로 돌아가서, 신밧드 씨에게 얘기해 볼게요.
그는 어디에나 친구가 있으니까, 실마리 찾는 일을 도와줄지도 몰라요.
라이트 휴...그래, 지금 할 수 있는 건 그게 다인 것 같네.

지나와 나는 한밤중까지 계속 단서를 찾아다니지만 소용이 없다.
일단 아침에 상단을 따라 수도로 돌아가기로 한다.